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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두 번째 달

by 머로디 2022. 8.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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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를 다룬 한국 sf 소설

 

 최근 왓챠에서 <지구>라는 다큐멘터리를 봤다. 지구의 탄생 과정에 대한 묘사를 인상 깊게 감상했는데, 마침 비슷한 내용을 다루고 있는 SF소설을 발견했다.

 평소에 독서량이 많은 건 아니지만 오랜만에 흥미를 끈 소재여서 망설이지 않고 구매했다. 그런데 기대했던 것보다 너무 재밌게 읽어서 후기를 남긴다.

 

 

 

 

두 번째 달 - 기록보관소 운행 일지

두 번째 달

 

 일단 배송 받고 보니 표지가 너무 예뻤다. 반짝이는 유광 재질에 옅게 홀로그램이 코팅되어 있다. 검은색 큐브가 대체 뭘 표현한 건지 아리송하긴 했으나 책을 다 읽은 후엔 모든 것이 이해됐다. 저건 바로 '달'이다.

 

 소설 도입부에서 인류는 두 번째 달을 발견한다. 미래에서 온 것인지, 과거에서 온 것인지 알 수 없는 이 물체는 인공위성처럼 지구 주변을 배회 중이다. 사실 인공위성의 기능을 포함한 것도 맞지만, 난 처음에 이 물체가 미래에서 타임머신 같은 장치를 통해 보내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창의적이지 못하게도.

 하지만 아니었다. 이것은 현대 지구가 있기 이전의, 원시 지구에서 보내진 것이었다. 아주 아주 오랜 기간동안 지구를 관찰하고 있던 인공지능이었다. 원시 지구가 멸망한 뒤 어떻게 현대 지구가 재탄생하게 되었는가를 기록하는, 말 그대로 '기록보관소'였다.

 

 두 번째 달은 실제 우리 현대 사회에 닥친 기후 위기를 주제로 다룬다. 과도한 이산화탄소와 메탄가스의 발생으로 인한 지구 온난화, 그로 인해 이미 멸망을 한 차례 겪었던 원시 지구. 그리고 지구의 재건 과정. 하지만 재건에 성공한 새로운 인류는 똑같은 실수를 반복 중이다. 여전히 일회용품을 남용하고 육류를 사랑하고 자연의 주인은 인간이라고 생각하며 난개발을 일삼는다. 두 번째 멸망이 코앞에 닥쳤다는 것도 모른 채.

 

 미련한 인류이거나 말거나, 현대 지구의 재건을 성공시킨 것이 바로 인공지능이다. 여기서 묘사되는 인공지능들은 인간의 성격을 입어 모두가 개성이 다르다. 그래서 그들 간의 대화를 지켜보는 것도 즐거웠다. 

 

 

지구테이아
 왼-왓챠 다큐멘터리 <지구>, 오-테이아 관련 이미지 ⓒNASA/JPL-Caltech                                      

 

 위에서 얘기한 다큐멘터리 <지구>에서는 현재의 지구가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설명해준다. 내핵을 품은 덩어리일 뿐이었던 지구에 '테이아'라는 쌍둥이 별이 충돌함으로써 현재의 지구가 될 수 있는 양분을 보태준 것처럼 묘사된다. 나는 그 과정을 매우 인상 깊게 시청했는데 이 책에서도 비슷한 묘사가 등장해 흥미로웠다. 이산화탄소와 메탄으로 인해 더 이상 생물이 살 수 없을 정도로 뜨거워진 지구에 얼음 행성들을 무수히 충돌시켜 지구의 온도를 낮춘다. 실제의 현대 과학으로는 아직 절대로 실현할 수 없는 일이겠지만 SF 소설이란 그런 거니까. 재밌는 발상으로 감상의 즐거움을 더했다.

 

 나는 항상 지구의 주적이 인간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리고 이 책에서도 비슷한 관점을 가진 단체가 등장한다. 내가 이 책 속의 인물이었다면 그 단체에 적극적으로 속하지 않았을까 싶다. 인류만 없다면 지구는 해피엔딩을 맞을 것만 같다. 그 어떤 인공적인 간섭 없이 그저 자연의 섭리만을 따르며. 하지만 책의 주인공 격인 인공지능은 자연을 파괴시킨 것도 인간이지만 회복시키는 것 또한 인간이라는 관점을 제시하며 인류에 대한 애정을 비춘다. 그래도 난 공감이 잘 안 가지만ㅎㅎ

 

 실제로 누군가는 지구온난화 자체가 음모론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가? 지금 현재도 장마로 인한 서울의 물난리 소식을 들으며 글을 쓰는 중이다. 한강 수위가 그렇게까지 높아졌던 걸 난 근래 들어 본 적이 없다. 하수도가 범람해 손가락만한 바퀴벌레들이 길거리로 쏟아져 나온다. 문득 인천 공항이 몇 년 후면 물에 잠긴다는 시뮬레이션 결과가 떠올라서 섬뜩해진다.

 

2030 인천공항

 

 난 학습하거나 업무를 볼 때 집중력이 좋은 편이지만 책은 거의 끝까지 읽다가도 결말이 뻔히 예상되거나 흥미가 떨어지면 완독을 포기하는 경향이 있다. 매정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시간을 버리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이 책은 받자마자 이틀만에 독파했다. 결말이 정해져 있는데도. 지구가 재건에 성공한다는 것을 아는데도. 하지만 그 과정이 너무 재밌어서 일을 하는 도중에도 들춰보고 싶을 정도였다. 그리고 후속편을 예고하는 문구에 오랜만에 설레는 느낌을 받았다.

 

 감상평을 요약하자면 재미있다. 원래도 공상과학 분야를 좋아하고 영화도 그런 것만 골라 봐서 딱 취향에 들어맞은 것일 수도 있지만, 전개가 빠르고 흥미진진하다. 개인적으론 그냥 넘기고 싶거나 지루한 부분이 하나도 없었다. 심지어 교훈적이기까지. 독서를 즐기는 편이 아닌데도 이렇게 뿌듯한 기분이 든 건 오랜만이었다. 책 후면에도 비슷한 맥락의 감상평이 있다.  '가볍게 읽고자 한다면 타임킬링으로, 깊게 보고자 한다면 그 안에 담긴 의미와 교훈을 찾아보자.'

 

 그래서, 후속작은 언제 나온다고요? yes24에 문자 알람까지 신청해 놓은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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