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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긴긴밤 (스포 주의)

by 머로디 2022. 8.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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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적인 책, 어른이 읽어도 되는 어린이 동화

삽화 있는 동화책

 

 

 제 21회 문학동네 어린이문학상 대상을 받은 작품이다. 삽화를 곁들인 동화다. 맘 잡고 읽는다면 앉은 자리에서 한번에 다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얇고, 술술 읽힌다. 어린이들이 읽는 책이니 술술 안 읽히는 것도 이상하겠지만.

 

 

 

 

각자의 바다를 향해

 

 흰바위코뿔소 노든은 코끼리 고아원에서 코끼리들과 함께 살았다. 코끼리 고아원엔 다리를 다쳤거나, 귀가 없거나 하는 등의 아픈 코끼리들이 많았다. 하지만 다른 코끼들의 그들의 곁을 지키며 보듬었다. 어쩌다 코뿔소가 코끼리들 틈에 살게 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노든은 그저 조금 다르게 생긴 코끼리들의 가족이었다.

 어느 날 까마귀가 날아와 바깥 세상엔 노든과 비슷한 코뿔소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해준다. 노든은 한편으론 그 세상이 궁금하지만, 코끼리들의 곁을 떠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코끼리들은 말한다. 우리는 너와 함께여서 다행이었지만, 바깥의 누군가도 너와 함께여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게 될 지 모른다고. 완벽한 코끼리가 되었으니 이번엔 코뿔소가 될 차례라고.

 

 노든은 코끼리 고아원을 떠나와 다른 코뿔소를 만나 가족을 꾸린다. 아내와 딸이 생겼다. 행복한 나날들이 이어진다. 하지만 어느 날, 인간들이 노든의 가족을 습격했다. 코뿔소의 뿔을 노린 사냥꾼이었다. 노든은 아내와 딸을 잃었다. 인간들을 향한 복수를 결심한다. 

 

 

 

 동물원에 잡혀 온 노든은 그곳에서 또 다른 코뿔소 앙가부를 만난다. 그는 동물원 태생이었다. 인간을 향한 노든의 분노와 복수심을 이해하지 못한다. 자신에게 이야기를 털어놓으면, 밤에 악몽을 꾸지 않을 것이라고 얘기한다. 노든은 그렇게 한다. 잉가부는 그렇게 노든의 친구가 되었다. 노든은 바깥 세상에 대해 설명해주고, 앙가부는 바람처럼 달리는 동안 아무 것도 막아 서지 않는 바깥 세상에 대해 궁금해한다. 둘은 탈출 작전을 세운다. 

 동물원에도 뿔 사냥꾼이 들이닥쳤다. 노든이 아픈 다리를 치료 받느라 우리에 없었던 사이, 앙가부는 사냥꾼들의 의해 죽었다. 궁금해하던 바깥 세상을 보지 못한 채. 동물원 사람들은 노든도 사냥꾼의 표적이 될 것을 걱정해 미리 노든의 뿔을 자른다. 그는 어느 새 세상에 하나 밖에 남지 않은 흰바위코뿔소가 되었다. 

 

 모든 것이 밉다. 인간들은 노든에게서 가족도 친구도 자유도 뺏어갔다. 다시 한 번 복수심이 불타오른다. 하늘에서 전쟁이라는 것이 동물원을 향해 떨어지던 날, 노든은 다시 바깥 세상에 풀려난다. 그때 비슷한 신세가 된 펭귄 치쿠를 만난다. 치쿠는 이상한 반점을 지닌 알을 가지고 있었다. 노든과 치쿠, 알은 함께 동물원을 떠난다.

 

 치쿠는 동물원에서 함께 점박이 알을 품던 친구를 버리고 나왔다. 오로지 알을 지키기 위해. 그래서인지 알을 무척 소중하게 보살피며 바다에 꼭 데려가려 애쓴다. 끝없이 이어지는 초원을 걷는다. 치쿠는 뭍에서 먹을 것을 제대로 얻지 못해 약해져간다. 노든에게 자신이 없더라도 알을 바다에 데려다달라는 부탁을 한다.

 

 알을 깨고 나온 펭귄이 제일 처음 본 것은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던 노든의 얼굴이었다. 그는 어느 새 또 혼자가 되어있었다. 노든은 펭귄에게 이름을 지어주지 않았다. 이름은 중요한 게 아니라고 했다. 누군가가 너를 좋아하게 되면, 걸음걸이나 냄새만으로도 너를 알아볼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그게 바로 너라고.

 둘은 바다를 향한 여정을 다시 시작한다. 하지만 노든은 인간들을 향한 복수 계획을 잊지 않았다. 그는 어느날 사냥꾼들의 냄새를 맡는다. 펭귄은 노든을 일게 될까봐 복수 같은 건 그만두라고 외친다. 노든은 펭귄을 보호하기 위해 사냥꾼들에게서 도망친다.

 노든은 도망칠 때 입은 부상으로 인해 지쳐 쓰러진다. 그런 노든을 발견한 또 다른 인간들이 그를 안전한 곳으로 옮긴다. 노든의 상태를 보살피고, 매일 신선한 풀을 제공한다. 펭귄은 몰래 인간들을 감시하며 나름대로 노든을 지킨다. 늦은 밤, 인간들이 사라지고 나면 그의 곁으로 가 대화를 나눈다. 다시 바다로 떠나자고 한다. 노든은 여기가 자신의 바다라고 한다. 너는 너의 바다를 찾아 떠나라고 한다. 펭귄은 노든이 처음 코끼리 고아원을 떠나던 순간처럼 고민한다. 하지만 결심한다. 혼자서도 자기만의 바다를 찾아 떠날 수 있다고.

 둘은 뿔과 부리를 맞대고 작별한다. 이제껏 그래 왔듯이 그들은 각자의 긴긴밤을 견뎌낼 것이다.

 

 

 

 

표지

 

 

 삽화들이 포근하고 인상적이다. 구도나 시점도 다양하고 색채도 풍부하다. 차분한 글의 분위기와 잘 어울려서 중간에 삽화를 보면서 눈물을 몇 방울 떨어뜨렸다.

 

 가족들 틈에서 안정감을 느끼며 행복했던 노든과 펭귄은 작별의 슬픔과 모험에 대한 두려움을 뒤로 하고 각자의 바다를 찾아 나선다. 난 아직도 철이 덜 들었나보다. 바다를 찾기보다 서로가 헤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더 큰 걸 보면 ㅎㅎ

 노든이 점박이 알에서 깨어난 펭귄의 이름을 지어주지 않은 점과, 그 이유에 대해 설명해주는 장면이 참 좋았다. 아이들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할 때 '너는 누구이며 이러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알려주기보다 '너처럼 행동하는 그 자체가 너'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 아이들이 이름 없는 펭귄에 자신을 이입하기도 좋을 것이다. '나'는 내가 원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은 내가 어떻든 나를 알아봐 줄 것이다.

 

 확실히 어른들이 읽기에도 좋은 동화다. 정체성을 찾아 헤매는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책이지만, 노든이나 펭귄과 비교해 내 어린 시절은 어땠는가를 돌아보며 치유하게 된다. 그리고 철이 덜 든 어른들은 여전히 배울 것이 많다. 아직도 바다를 찾지 못한 어른들도 많을 것이다. 어쩌면 조금 늦었을지도 모르지만, 울림 있는 교훈을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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