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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필리핀 - 보라카이

by 머로디 2022. 8.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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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의 여행기다. 시작부터 다사다난했던...

 

 여름 휴가 차 나와 부모님, 그리고 동생 이렇게 총 4명의 보라카이행 항공권을 구매했다. 그리고 출발 당일 새벽, 아침 비행기라 해가 채 뜨기 전에 짐을 챙겨 집을 나섰는데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새벽이라 어두운 데다 비까지 내리니 한치 앞이 잘 보이지 않아 우리는 공항에 늦게 도착하고 말았다. 헐레벌떡 안내데스크로 뛰어가 늦었다는 걸 알면서도 물었지만 역시나 비행기가 떠났다는 직원의 대답이 돌아왔다. 허무하기 짝이 없었다. 그렇게 날아간 수백만원어치의 항공권. 심지어 다 내 돈이었음ㅋㅋ

 

 억울하면서도 자괴감이 밀려오는 가운데, 도저히 공항에서 발이 떨어지질 않았다. 1년에 한번 뿐인 여름 휴가를 이렇게 망쳐도 되나? 오히려 부모님은 체념이 빨랐지만, 나와 동생은 그렇지 못했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당장 출발 가능한 보라카이행 항공권을 찾아 헤맸다. 스카이스캐너를 뒤졌지만 휴가철 당일 출발 가능한 4인분의 항공권이 없었고, 각 항공사 데스크에 고개를 들이밀며 문의해도 남아있는 항공권이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부모님은 그냥 집에 돌아가자고 우릴 설득했다. 그러다 껌딱지처럼 공항 바닥에 발을 붙이고 서있는 우리가 불쌍해 보였는지 나중엔 둘이라도 다녀오라고 얘기했다. 있었다. 2인의 항공권은.

 

 

 

 오기와 집념으로 시작된 불효녀 둘의 보라카이 여행기

항공샷1항공샷2
제목은 거창하지만 별 거 없음

 

 당일 출발 항공권 2매를 구매해 동생과 함께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도착할 때쯤 내려다 본 땅은 한국과 모습이 사뭇 달랐다. 빽빽하게 들어찬 아파트 대신 푸릇푸릇하게 펼쳐진 초원 같은 땅, 그리고 길을 따라 듬성듬성 자리 잡은 단층 주택들. 내가 정말 이국에 와있다는 생각이 들어 설렜다. 새벽부터 했던 생고생은 이미 잊은 채. 그리고 앞으로 펼쳐질 고행길도 예상하지 못한 채.

 

 

바다
날씨는 완벽했다

 칼리보 공항에 도착해 환전을 하고 여행사에 예약한 차량을 기다렸다. 당연하지만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눈앞에 보라카이의 쾌청한 풍경이 펼쳐지는 게 아니라, 차량과 배를 타고 보라카이 섬까지 또 들어가야 하는 여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동하는 길이 상당히 고단하고 지루했다. 공항에서 봉고차를 타고 선착장으로 이동 - 배로 보라카이까지 이동 - 다시 봉고차를 타고 해변가(번화가) 숙소로 이동. 이 루트였다. 몇 시간이나 걸렸는지 까마득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보라카이는 원래 들어가기 힘든 곳으로 유명하더라. 이동 시간이 길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체감하는 거랑은 또 달랐다.

 

해변1해변2
해변3해변4

 

 보라카이에 도착해 앞장선 현지 가이드를 따라 좁은 주택가를 굽이굽이 지나쳤다. 여름이라 당연하게도 날이 덥고 꿉꿉했다. 하지만 해변가에 도착하고 나서는 모든 잡념과 불평 불만이 물에 씻은 듯이 사라졌다. 허름한 집들 사이로 저런 색깔의 바다와 하늘, 야자수가 보이는 순간, 거짓말 안 치고 '그림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물 색이 저럴 수 있지? 지금 보면서도 믿기지가 않는다. 말 그대로 이전까진 그림이나 사진에서나 보던 풍경이었다.

 

 

야자수1야자수2야자수3

 

 내가 상상하던 휴양지 그 자체였다. 해변가에서 제 멋대로 널부러져 휴식을 취하는 사람, 물놀이 하는 사람, 근처 가게에서 음료를 사 마시는 사람... 보라카이의 유명한 쇼핑센터는 기대했던 것에 비해 조촐하고 별 거 없었지만 바다 풍경만으로 언젠간 다시 한 번 찾고 싶은 곳 리스트에 올랐다. 특히 부모님과 함께ㅠㅠ

 

스쿠버다이빙

 

 수상레저를 즐기는 편은 아니라서 스쿠버다이빙만 예약했다. 한 번 쯤은 체험해 볼 만한 것 같다. 잠수 전에 교육을 받고 들어가는데 물 속에서 동생이 나를 웃기는 바람에 수경 안으로 물이 꼬로록거리며 들어왔다. 당황했지만 교육 받은 대로 고개를 뒤로 젖혀 공기를 바깥으로 다시 빼냈다. 산호와 물고기들이 신기하고 예뻤다. 

 

 인스타 감성이 없어서 음식 사진을 잘 안 찍는데, 기억에 남았던 건 크랩과 새우 요리다. 보라카이에서 먹은 것 중 가장 비싸기도 했고 대충 예상 가는 맛에 실제로도 아는 맛이었지만, 좋았으면 그만 아닌가. 가게 이름이 '레드크랩'이었나? 한국인이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확실히 기억 나지 않는다. 게의 무게에 따라 가격이 책정되고 생물을 직접 보면서 고를 수 있었다.

 

야경1야경2야경3

 

 우기라서 드문드문 비가 내렸다. 둘째날 밤에는 이래도 괜찮나 싶게 폭우가 쏟아져 내렸다. 낯선 곳에 있으니 괜히 무서워서 밤새 뜬눈으로 '보라카이 쓰나미', '보라카이 홍수' 이런 걸 검색해보고 그랬다ㅋㅋ

 

 휴양 목적으로 찾는다면 강력히 추천한다. 쇼핑 센터는 생각보다 보잘 것 없다. 사람만 바글바글했지, 딱히 기억에 남는 음식도 구경거리도 없다. 내가 워낙 쇼핑에 관심이 없어서 그런 걸 수도. 아, 길을 다니며 망고 주스는 질리게 먹었다. 간식으로도 먹고 식사 중에도 먹고. 근데 망고 자체가 맛있어서 숙소에서 파는 주스랑 카페에서 주는 주스랑 퀄리티가 별반 다르지 않다. 어딜 가도 성공할 거라는 뜻.

 

 나중에 꼭! 부모님 보시고 한 번 더 가보고 싶다. 그때까지 변치 말아라, 보라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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