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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지구 끝의 온실 (스포 주의)

by 머로디 2022. 8.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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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문제, 기후 위기를 다룬 한국 SF소설

SF에 여성 서사 로맨스 한 스푼

 

 

 '두 번째 달'을 읽고 나서 sf소설에 대한 흥미가 솟구쳤다. 비슷한 느낌의 소설이 없을까 찾아 헤매다가 구매한 책이 바로 '지구 끝의 온실'이다. 책을 구매하면서 항상 느끼지만 표지 디자인을 무시할 수 없다. 이 책도 표지가 상당히 예쁘다.

 

 

표지

 

 '더스트'라는 이상 현상이 지구의 종말을 초래했다. 더스트가 스치고 지나간 자리엔 죽음만이 남는다. 곤충도, 식물도, 짐승도, 인간도 모두 썩어 없어진다. 더스트에 면역이 있는 내성종들을 제외하고는. 살아남은 내성종들은 메말라버린 지구에서 식량과 물자를 위해 서로를 해치고 약탈한다. 미래의 흔한 디스토피아를 묘사하고 있는 소설이다. 

 

 시점은 현재와 과거를 오간다. 현재는 인류를 멸망에서 구한 '디스어셈블러'라는 장치가 더스트를 몰아낸 시점이다. 도시에 돔을 씌워 더스트로부터 목숨을 부지한 일부의 인류와 내성종들은 지구를 되살리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지구의 멸망을 막은 존재는 디스어셈블러 이전부터 있었다. 바로 그 존재를 과거 시점에서 추리하듯 파헤친다.

 

 

 

 아마라와 나오미는 더스트가 세상을 덮쳤던 시대, 연구소에서 생체 실험을 당하다가 도망쳐 나온 자매다. 나오미는 거의 완벽한 내성을 지녔지만 아마라는 그렇지 못해서, 소문으로만 전해지는 유토피아를 찾아 나선다. 그곳에선 돔이 없이도 자유롭게 숨을 쉴 수 있고 서로가 서로를 약탈하지 않는다. 밀림 같은 숲을 헤매며 같은 도망자 신세인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고 내성종 사냥꾼으로부터 추적을 당하기도 한다. 그런 유토피아가 정말로 있을까, 의심과 절망이 깊어지던 때 그들은 마침내 그 마을을 발견한다. 

 '프림 빌리지' 사람들은 마을의 안전과 제한된 물자를 걱정해 처음에는 자매를 적대시한다. 하지만 둘의 나이가 어리고, 쫓겨난 뒤 마을에 대한 정보를 발설할 수 있다는 등의 의견을 취합해 결국에는 주민으로 받아들인다. 자매는 얼마 안 가 문제 없이 마을에 적응해 사람들과도 친화적으로 어울린다. 

 마을의 리더 격인 '지수 씨'는 기계를 잘 다루는 정비사다. 그리고 또 한명의 신비로운 인물이 등장하는데, 마을 언덕 꼭대기에 있는 온실에 하루종일 처박혀 식물들을 돌보는 '레이첼'이다. 그는 그만이 아는 방식으로 더스트를 인체에서 분해하는 분해제를 만들어 마을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대신, 식물 종자들을 받아 온실에서 기른다. 지수 씨와 함께 이 마을에 처음 들어온 인물이기도 하다. 둘의 관계는 복잡미묘한 분위기를 띈다. 나오미의 물음에 지수 씨는 레이첼과는 일종의 계약을 맺은 관계라고 대답한다.

 

 솔직한 감상평으로는, 나는 이 책의 절반부를 읽을 때까지도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서론이 무지막지하게 긴 느낌이었다. '모스바나'라는 식물을 추적하는 과정이 좀 지루했다. 그래서 완독하기까지 거의 몇주가 걸렸다. 뒷 내용이 궁금하지 않아 덮어놨던 시간이 길었으니까. 하지만 중반부를 넘어 마을 사람들에 대한 비밀이 밝혀지고 지수 씨와 레이첼의 관계가 서서히 드러나면서부터는 읽는 데 가속이 붙었다. 공상과학 소설에서 별로 기대치 않았던 로맨스에 살짝 설렜다ㅋㅋ 

 

 

본문1
본문2

 

 

 레이첼은 전신의 생체 반응이 30%정도 밖에 되지 않는 사이보그다. 지수를 만나기 전부터 자신의 신체를 기계로 대체해 왔다. 그는 '더스트 폴'을 초래한 연구 집단의 직원이었으며 모스바나가 더스트를 과응집시켜 분해까지 이끌어낸다는 사실을 밝힌 식물학자다. 식물을 사랑하며, 자신이 돌보던 식물들 사이에서 자살할 결심을 하기도 했었다. 스스로 기계 신체의 전원을 끄고 완전히 죽을 날을 기다리던 그를 지수가 다시 깨워냈다. 

 둘만 모르는 애정전선이 진즉부터 둘을 감싼다. 레이첼은 자신의 기계 신체를 살피는 지수에게 오랫동안 시선을 던지고, 지수는 그 시선을 붙잡고 싶어한다. 지수의 그 감정이 집착까지 이어져 레이첼의 뇌를 기계로 완전히 대체하는 과정에서 실수를 저지르지만, 그러지 않았어도 둘의 감정은 쌍방이었을 것 같다. 레이첼은 지수 이후에 아무에게나 끌림을 느끼지도 않았고, 사실 뇌를 조작하기 한참 전부터 그의 시선은 지수에게 머물러 있었으니까.

 

 마을은 결국 마을을 차지하려는 바깥 사람들로부터 파국을 맞는다. 마을 사람들은 서로와 생이별하며 다음에 만날 날을 기약한다. 그리고 지수로부터 레이첼이 기른 모스바나를 받아 새로 정착한 자리에 심는다. 모스바나의 엄청난 번식력은 금세 지구 전역을 뒤덮었고, 디스어셈블러의 작용이 있기 전 이미 한차례 더스트의 활약을 막았다.

 

 나오미는 자신을 직접 찾아와 모스바나에 대해 취재하고 과학적으로 학계에 알린 아영에게 말한다. 마을을 떠난 뒤에도 다시 재건하려고 애썼지만 그러지 못했다고. 유토피아를 재건하지 못했다고. 하지만 아영은 그에게 모스바나가 세계 전역으로 뻗어나가 점을 이룬 지도를 보여준다. 마을 사람들은 지수와의 약속대로 새로운 땅으로 떠나와 모스바나를 심었다. 그리고 그곳에서부터 다시 생명이 움텄다. 지구가 유토피아 그 자체, '프림 빌리지'로 재현된 것이다.

 

 '두 번째 달'은 읽는 내내 엔돌핀이 솟구쳤다면 '지구 끝의 온실'은 잠잠하다가 끝에 가서 몰아치며 뭉클함까지 더해진 느낌이었다. 서로 다른 매력이 있다. 귀찮아하지 않고 끝까지 읽은 보람이 있다. 김초엽 작가님의 다른 작품들도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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